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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원하던 크리스마스의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렸다. 외계 산타클로스가 두 자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우주선을 침범하던 우주 악당, 리우를 무찌르고 무사히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는 내용. 마지막까지 처절한 악당의 역할을 해주었던 카미시로 루이는 쇼의 막이 내리자마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고생했어.”

 

  나지막이 들려오는 소녀의 목소리에 루이는 몸을 두어 번 털고는 그녀의 앞에 서 보였다. 네네가 루이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네네. 이제 대기실로 돌아가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네네를 보며 예쁜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인 루이는 이어 자신의 손을 내주었다. 거절할 이유도, 그렇다고 그의 에스코트를 받을 이유도 딱히 존재치 않았던 네네는 잡지 않으면 그가 무안해지리라, 그리 생각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악당 리우를 무찌르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역할이 네네가 연기한, 두 자매의 첫째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직 분장을 풀지 않은 채 손을 잡고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둘의 모습은 꽤 역설적이었다. 대기실로 내려오니 루이의 말대로 츠카사와 에무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은 역동적이었다. 분명 무대로 올라가기 전까지 단순하고 어찌 보면 삭막하게까지 여겨졌던 그 공간이 언제 또 뒤바뀌었는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기계장치의 오작동을 우려해 꺼두었던 벽난로는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는 다양한 색상의 양말들로 꾸며져 있었다. 갈색이었던 소파는 그 위에 붉은색 시트를 덮어 꽤 크리스마스의 모양새를 냈고 탁자 위에는 통나무 모양의 롤케이크, 칠면조 구이 등이 올려져 있었다. 트리는 급히 가져온 것인지 꾸며진 것 없는 조촐한 모양새였다. 츠카사의 산타클로스 분장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 없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였다.

 

  “…이건?”

  ”오야, 우리가 없는 사이에 가져다 둔 모양이네.”

  ”응! 산타클로스 씨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줬어!”

 

  루이의 말에 에무가 맑게 웃어 보였다. 산타, 라니. 보나 마나 그 인형 탈이 가져다준 것이겠지. 딱히 정정해줄 생각은 없는 건지 네네는 그리 생각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트리는 꾸며져 있지 않은데.”

 

  대신 입밖으로는 다른 말을 꺼내 들었다. 단순한 모양새의 트리이기 이전의 나무 모형을 네네는 올려다봤다. 루이의 키와 에무의 키 절반을 합치면 저 정도의 크기가 될까. 아니, 저걸 어떻게 대기실 안까지 들여온 거람. 네네의 말에 답을 단 건 츠카사였다.

 

  “그렇다! 지금부터 우리는 저 트리를 꾸밀 계획이다! 크리스마스이고 하니 말이지!”

 

  ”크리스마스, 6시간밖에 안 남았잖아?”

 

  츠카사의 말에 다시 토를 단 건 네네. 하지만 그는 6시간이나 남았다며 에무와 함께 트리를 꾸밀 장식품을 가져오겠노라 외치고는 대기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가버린 츠카사를 향해 같이 가자며 따라 달려 나가는 에무. 둘의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대기실 밖으로 달려 나간 뒤에도 복도를 울려대더니 금세 잠잠해졌다. 이제 대기실 안에는 루이와 네네, 두 사람뿐이었다. 먼저 소파 위에 앉은 루이가 네네를 불렀다.

 

  “네네, 이리 오렴.”

  “…아, 응.”

 

  루이의 부름에 네네가 루이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그 둘을 따르는 건 덤이었다. 평소에 어떤 대화를 했더라. 어떻게 지냈더라. 생각해보면 지금껏 네네에게 말을 걸어온 쪽은 늘 루이였다. 눈치채고 나서야 조금 미안해졌는지 네네가 루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루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기에 그녀가 그에게 시선을 던지자 당연하게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렇게 시선이 얽혀들어 가, 다시 눈을 돌리는 데에는 네네에게 있어서 약간의 부끄러움이 따랐다. 눈이 마주쳐 부끄러움을 느껴버렸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쿠사나기 네네는 카미시로 루이에게 친구 이상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백하지 않음은 스스로의 문제에 있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는,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없는 믿음으로 인한 문제, 또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관계가 틀어질 거라는 일말의 두려움이 그 이유였다. 그렇기에 네네는 루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소꿉친구, 그 이상의 길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원더랜즈 쇼타임의 시끌벅적함을 담당하는 두 사람의 부재가 이렇게 어색한 결과를 낳으리라고는 그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츠카사와 에무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두 사람, 적어도 쿠사나기 네네만큼은 어색한 공기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말을 꺼내려는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으나, 줄곧 해왔던 대화의 기억나는 주제라고는 크리스마스 쇼의 진행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쇼는 이러한 부분을 고쳐줬으면 한다 등의 사적인 내용 하나 없는 어찌 보면 삭막한 대화였기에 더더욱 대화의 주제가 떠오르지 않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네네가 용기 내 입을 열려는 시도를 해왔으나 결국 두 사람이 돌아와 버리는 탓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큰 상자 하나를에무와 함께 자리에 내려놓은 츠카사는 아직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벗지 않은 채였다. 네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 옷, 안 더워?”
  “괜찮다! 오히려 네네와 루이의 옷이 더 불편해 보이는데,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호기롭게 답해주고는 반대로 둘을 걱정해주는 그였다. 확실히 츠카사는 덥다는 특징을 제외하고는 딱히 불편해 보지는 쪽은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쪽은 루이와 네네, 특히 루이의 의상이었다. 별 반짝이가 주렁주렁 달리고 촉감마저 가장 좋은 재질로 부탁했음에도 거친 티가 많이 났다. 의상 특유의 뻣뻣한 느낌에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루이 스스로 완벽한 만세는 불가능해 보였다. 츠카사의 말에 루이가 입을 열었다.

  “아아, 확실히 무대 의상은 조금 불편하네. 네네는 갈아입을 예정이니?”
  “아니 난 괜찮아. 루이 먼저 갈아입고 와도 좋아.”
  “응, 그럼 다녀올게.”

  네네와의 짧은 대화를 끝마친 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마 탈의실이 대기실 바깥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가 나가고 대기실은 츠카사와 에무의 수다 소리로 가득 찼다. 이따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장식품 거는 것을 도와달라거나 하는 부탁이었다. 네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기, 이곳?”
  “응, 네네 쨩! 이거랑 이것도!”
  “아, 응.”

  에무의 부탁으로 트리 앞에 다가간 네네의 손에 잡힌 것은 작은 산타 인형이었다. 루돌프 인형 위쪽에 하나, 트리 뒤쪽에 하나를 붙이고 나서 눈꽃 모양의 장식품을 걸어달라는 새 의뢰가 들어왔다. 네네가 트리를 살피며 눈꽃 모양의 장식품을 대보는 사이, 에무가 화장실에 가보겠다며 두 사람만을 남기고 대기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은 에무가 남긴 몫까지 트리에 달아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군!”
“아, 응. 그러네.”

  츠카사의 말대로였다. 야외 무대 특성상 원더 스테이지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쇼의 중반부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무대의 분위기를 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거 알고 있나?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한다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거, 그 해의 첫눈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보면 그 사람과 이루어진다는 미신이랑 헷갈린 거 아니야?”
 
  헷갈린 것이 부끄러운 건지 얼굴을 붉히며 무어라 말해대는 츠카사를 뒤로 한 네네가 다음 장식품을 잡았다. 큰 풍선을 든 소년이었다.

  “…그러면 네네,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아, 절대 네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장식품이 부실했던 건지, 풍선과 소년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녀의 손에는 보라색과 파란색이 적절히 섞인 풍선만이 남았다.

  “있는 건가?! 내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말해다오! 네네의 사랑을 응원하마!”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없어, 그런 거.”

  츠카사의 터무니없는 말에 결국 네네의 두 뺨이 옅게 물들어버렸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저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진짜라면 100에 30정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실패해버린다면 지금보다 못한 관계가 되리라는 사실쯤은 네네도 알고 있었다. 고백 따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루이에게 고백할 일은 없을 것이며, 루이가 자신에게 고백할 일은 더더욱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애당초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고백이 성공한다는 기적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그래도 한 번쯤은 믿어봐도 좋다, 고 생각하는데.”

  언제 돌아온 것인지 문 옆에 기대고 서있었던 루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루이의 등장에 츠카사는 반겼으나 네네는 고개를 숙였다. 아직 옅게 물든 제 뺨을 보이면서까지 그를 맞이할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떨어져 버린 풍선 모양 장식품을 내려놓고는 무작정 다른 장식품을 손에 잡았다. 푸른 장미였다.

  “오야, 네네. 파란 장미는 기적을 상징한다는 거, 알고 있니?”
  “…알고 있어.”

  그런 것쯤은. 루이가 알려준 거잖아. 차마 꺼내지 못한 다음 말을 목 깊숙한 곳에 내려놓고는 그것을 트리 옆쪽에 달았다. 어울리지도 않는 장미가 왜 여기에 들은 것인지. 루이가 도와주겠답시고 네네의 옆에 서서 장식품을 꺼내 들었다. 다람쥐 모양의 장식품이 루이의 손에 잡혀 나왔다. 네네보다 큰 손으로 그것을 한 손에 쥔 그가 트리 위쪽으로 손을 뻗었다. 다람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년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작업이 진행되었다. 중간에 돌아온 에무까지 더해 트리는 화려함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별과 분홍색 토끼. 네네로보와 닮은 장식품까지 다 달고 나서야 달 수 있는 모든 장식품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마무리를 위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간 에무와 그 밑의 츠카사, 네네, 그리고 루이까지 다 함께 미니 전구가 달린 전선을 들어 나무에 얹고 나서야 원더랜즈 쇼타임만의 트리가 완성되었다. 오랜 시간 트리에 매달렸기에 음식들은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였고 롤케이크는 조금 수분이 날아가 버린 상태였으나 넷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보내다 시계가 10시를 알리고 나서야 에무를 시작으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를 다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11시가 거의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피닉스 원더랜드의 문은 닫히고 있었다. 에무는 대기하고 있었던 오오토리 가의 사람들과 돌아갔으며 츠카사는 여동생, 사키가 걱정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먼저 가버렸다. 캄캄한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루이와 네네 뿐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눈송이들이 그들의 어깨를 적셨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응, 루이도. 고생했어, 루이.”
  “후후, 천만에. 나보다는 주연이었던 네네와 에무 군, 츠카사 군의 활약이 더 컸어.”
  “아니야. 악당 리우가 나왔을 때, 관객들의 환호 소리도 꽤 컸는걸.”

  아이들의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관객 중에서는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여성들도 그의 등장에 환호해주고는 했었다. 아마 그의 뛰어난 외모 탓이다. 그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네네의 말에 루이는 단순 고맙다는 말로 답변했다. 천천히 웃어주는 루이의 모습에 네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쓰린 일이었던가. 남들이 말하던 사랑은 아름답다는 말은 도대체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그녀가 겪는 짝사랑이라는 틀에 갇힌 마음은 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돌아가는 길 내내 네네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들어버렸다가는 좋아한다는 말이 자기 멋대로 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가는 내내 루이는 침묵을 지켰다. 네네가 고개를 숙인 탓에 머리 뒤쪽에 내려앉은 눈을 바라보기만 할 뿐, 무어라 더 말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다시 말을 붙인 것은 집의 외관이 뚜렷이 보일쯤이었다.

  “네네, 츠카사 군의 말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하는 고백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니?”
  “얼토당토않은 미신이야. 애초에 눈이 내린다는 이유로 이루어질 리가 없잖아.”
  “오야, 네네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루이는? 그 미신, 믿을 생각이야?”
  “뭐, 아까 말했다시피. 한 번쯤은 기적을 바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하지만, 루이. 좋아하는 사람, 없잖아.”

  루이의 말에 네네가 웅얼거렸다.

  “오야, 오야.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야, 루이…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의 도움을 준 적도 없었고…”

  …그리고, 루이가 누군가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자신의 말에 돌아오는 답이 없자 네네는 고개를 들어 그를 확인했다. 자신을 보며 옅게 웃어주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 미소는 나만 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들어버렸다. 중증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어.”
  “…아, 있었구나.”

  자신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네네의 표정이 옅게 어두워졌다.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빨리하는 네네의 옆에 루이가 따라붙었다.

  “응, 지켜주고 싶은 사람. 네네는 있을까?”

  루이의 말에 네네가 자리에 멈추어 섰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 이라니. 부럽네, 그 사람. 아니, 그보다 그러한 사람이 자신에게도 있냐니. 입술을 잘근 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대답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이미 루이의 마음에 들어찬 사람을 밀어내기에는 쿠사나기 네네라는 사람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질러보고 싶었던 것은 약간의 오기일까.

  “있어. 좋아하는 사람.”

  루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바보같이 이상한 기계들만 보면 좋아하고, 채소는 안 먹는 사람.”

  이어 들어온 답변에 그가 멈추어 섰다.

  “내 소꿉친구라는 사람.”

  마지막 답변을 뒤로 네네는 자신의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저질렀다. 망했다. 아까의 자신만만한 스스로의 약속은 어디 갔던가. 절대 루이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은,

  “네네.”

  루이의 목소리가 집에 들어가려는 네네를 붙잡았다. 참으로 낯선 목소리였다. 멈추어 설 뻔한 자신의 다리를 겨우 움직였다. 지금 이대로 루이를 볼 낯이 없었다. 완벽하게 익어져서는 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손목이 붙잡혔다.

  “루이. 놔.”

  목소리마저 떨리기 시작한다. 최악이다. 당장의 네네는 얼른 들어가서 씻고, 다음 날부터 루이를 피해 다닐 궁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들려오는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좋아해, 네네.”

  좋아한다니. 귀를 의심하기를 한 번, 두 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붙잡은 사내를 바라본다. 그 역시 고개를 푹 숙이고, 뒷목까지 붉어진 채로 어찌할 줄 모른다.

  “…하지만 루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 좋아해, 네네.”

  낯선 감정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심장이 요동쳤다. 카미시로 루이가 쿠사나기 네네를 좋아한다. 평생 네네에게 와닿지 않을 그 진심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몸을 틀어 정면으로 루이를 바라봤다. 자기보다 1.5배는 더 큰 사내가 붉어진 얼굴로 한 번 더 현실을 자각시킨다.

  “좋아해. 많이 좋아해,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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